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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새벽 낙산사 여행
작성자 : [여행달인] 천년주목님
작성일 : 2020-01-25
조회수 : 78

2020년 음력 11일 설날 새벽에 가족이 함께 낙산사로 일출을 보기위해 떠나기로 했다. 새벽 530, 어둠이 깔린 캄캄한 새벽에 춘천에서 출발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 인제 양양 터널(10,965m)을 지나 낙산사 주차장에 7시 정각에 도착했다. 오늘 해돋이는 737분으로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사람들이 벌써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차안에서 쉬다가 의상대로 발길을 옮겼고 해 뜨는 모습이 어려울 것 같은 생각에 다시 홍련암으로 자리를 옮겼다. 완전한 일출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밤사이 비가 온 것에 비하면 그나마 해의 모습은 반갑기만 했다. 멀리 보이는 설악산에는 눈이 하얗게 보인다.









낙산사는 신흥사의 말사이다.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를 갖춘 사찰로,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 중의 하나이다. 낙산은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671(문무왕 11) 의상이 창건하였다.

창건 이후 원효도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이 절을 찾았는데, 원효가 절에 이르기 전에 관세음보살의 화신을 만나게 되었지만 알아보지 못하였고, 낙산사에 가서도 풍랑이 심해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굴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보전·종각·일주문·천왕문·선실·승당·객실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499호인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인 양양 낙산사 홍예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인 낙산사 원장, 보물 제1723호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및 사리장엄구 일괄,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6호인 낙산사 홍련암 등이 있다.









이 중 칠층석탑은 창건 당시 3층이었던 것을 1468년의 중창 때 7층으로 개축했다고 전한다. 홍예문은 반월형의 문루인데, 낙산사 입구에 세워져 있다.

화강석 26개를 장방형으로 다듬어서 반월형의 문을 만들었는데, 26이라는 숫자는 당시 강원지부의 고을 숫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당시 강원도에는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세조의 뜻에 따라 각 고을의 군수가 석재를 하나씩 모아서 세웠다는 속전이 있다.

원통보전의 담장은 적토로 빚은 기와와 화강석을 배열한 것으로 전체 높이 4m, 둘레는 30m에 이르고 있다. 근년에는 화강암으로 다듬은 동양 최대의 해수관음입상을 조각하였는데, 석재는 전라북도 익산의 호남 채석장에서 반입한 것으로 750톤이 소요되었다. 조각가 권정환에 의해 19725월 착수되어 5년 만인 1977116일 점안되었다.



높이 16m, 둘레 3.3m, 좌대 넓이 6이며, 좌대의 앞부분은 쌍룡상, 양 옆으로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 한 송이 연꽃으로 된 연봉 위에 관음보살상을 안치하였다.

관음상은 왼손에 감로수병을 받쳐들고, 오른손은 천의 자락을 살짝 잡고 있으며, 미간에는 백호를 박아 온누리에 퍼지는 자비의 광명을 상징하고 있다. 크기와 원만한 상호, 균형 잡힌 체감미 등이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이 밖에도 이 절 옆에는 의상이 홍련 위에 나타난 관음을 친견하고 대나무가 솟은 곳에 불전을 지었다고 전하는 자리에 세운 홍련암이 있으며, 의상이 좌선했다는 의상대 등이 있다. 도량 전체가 사적 제495호 양양 낙산사 일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2005년 강풍을 타고 번진 산불로 낙산사는 큰 화재 피해를 입었다. 문화재청은 2007년까지 원통보전, 범종루, 심검당, 취숙헌, 선열당, 홍예문누각, 홍련암연화당, 해우소 등을 신축하였고 2009년에는 설선당, 근행당, 응향각, 정취전, 취숙헌, 고향실, 빈일루, 대성문 등을 신축하였다. 2015년 현재 화재로 손실된 사찰의 모습은 복원되었고, 주변 숲은 회복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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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에 낙산를 다녀오셨군요. 저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아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