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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신숭겸장군(신장절공묘역) 묘
작성자 : [여행달인] 천년주목님
작성일 : 2020-02-03
조회수 : 42

강원도 춘천시 서면에는 신숭겸 장군 묘가 있다. 202023일 월요일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하늘에 신숭겸장군묘역을 가기로 했다. 묘는 북배산에서 시작한 맥이 굽이굽이 흘러가다 혈을 형성했다. 혈 앞에는 넓고 크게 국세가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왕건의 신후지지(身後之地), 옥룡자(玉龍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왕건에게 잡아준 옥등괘벽혈(玉燈掛壁穴 등잔이 벽에 매달려 있는 형태)로 서기왕성(瑞氣旺盛)하여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로 알려져 있다



 

왕건의 묘로 점지해둔 자리가 신숭겸 장군의 묘가 된 것이다.  

태조 왕건은 고려의 땅을 확장하려고 전쟁을 계속 했다. 왕건은 전쟁에서 계속 승리를 하며 영토를 넓혀 나갔다. 9279월 왕건은 신라를 침략하여 승리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대구 공산 부근에서 후백제 견훤왕의 군대와 마주쳤다. 왕건의 군대와 견훤의 군대는 서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태조 왕건의 군대는 후백제 견훤왕의 군대에 포위되어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

신숭겸 장군이 태조 왕건에게 다시 말했다

소신이 대왕의 옷을 입고 전투에 나가 싸울 테니 대왕께서는 이곳을 빠져 나가십시오!”

왕건은 신숭겸 장군에게 옷을 벗어주었다

신숭겸 장군은 왕의 갑옷을 입고 왕의 말을 타고 전투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후백제 견훤왕의 군대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전투를 격렬히 벌임으로써 왕건이 전투현장에서 목숨을 건지고 빠져 나갈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왕건과 부하들은 다시 공산전투 현장을 찾았다. 신숭겸 장군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왕건은 신숭겸 장군의 시신을 찾았다. 왕건은 신숭겸 장군을 보고 깜짝 놀라며 통곡했다.

신 장군, 나를 살리고 전사하셨소!” 

왕건이 더욱더 통곡을 한 것은 신숭겸 장군의 시신 중에 머리가 없어서였다. 후백제 견훤왕의 부하들이 왕건으로 착각하고 신숭겸 장군의 목을 잘라간 것이었다왕건은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짐은 신숭겸 장군의 묘를 도선국사께서 짐의 신후지지로 점지해둔 춘천의 만대영화지지로 정하니 그곳에 모셔라!” 

태조 왕건은 또한 장례식은 성대히 치르고 장군의 머리는 금으로 만들라!”고 명했다.









이후 태조 왕건은 장례식에 친히 납시어 비통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왕건은 신숭겸 장군의 두상을 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신숭겸 장군이 어디에 묻혔는지 모르게 봉분을 3개로 만들게 했고, 신숭겸 장군과 김락이 위왕대사(爲王代死) 순절한 자리에 순절단을 세우고 지묘사를 창건하여 명복을 빌게 했다. 또 묘역 주변의 땅을 18000보를 하사하고 묘를 지키는 군사 30호를 두어 수 백 년 동안 장군의 묘를 수호하게 했다





훗날 고려 예종은 태조 왕건과 견훤왕이 공산전투에서 싸우던 중 태조 왕건이 궁지에 몰렸을 때 왕건을 대신해 죽은 신숭겸과 김락을 기리는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어 애도했으며, 신숭겸 장군의 기상은 계속 이어져 충성의 본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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