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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예원 옛 거리
작성자 : [여행달인] 천년주목님
작성일 : 2020-01-17
조회수 : 256

  상하이 임시정부를 둘러보고 쑤저우의 4대 원림과 더불어 중국의 강남 정원을 대표하는 예원. 그곳을 가기 위해 옛 거리를 찾았다.

불행하게도 예원의 사진은 다 날아가고 고작 거리에서 찍은 사진 몇 장만 남아있다.

 예원은 명나라 때 형부상서를 지낸 반은의 둘째 아들 반윤단이 1559년 아버지를 편안하게 모시겠다는 취지로 18년에 걸쳐 지은 것이 시초다.

당시 면적이 무려 46,000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예원이 완공되기 전에 돌아가셨고,

그 역시 예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1842년 아편전쟁 때 영국군이 머물렀고, 1853년에는 소도회가 지휘소로,

1860년에는 프랑스군이 주둔지로 삼으면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현재의 예원은 1956년 이후에 중건한 모습이다.

면적은 초기보다 반 이상 줄어든 20,000규모이다.중국 원림은 어디하나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구석구석 인공적으로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주인의 문학과 예술적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예원은 훗날 복원하면서 강남 원림의 모든 장점을 아우르도록 지어졌다.

공간 구성이 쑤저우 원림에 비해 불규칙적이라서 여행자에게는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예원은 크게 삼수당, 만화루, 회경루, 점춘당, 옥화당, 정관당 일대로 나뉜다.

그러나 구획을 나눈 이름보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서린 구곡교, 원림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요소인

인공 산 대가산, 점입가경 사자성어가 유래된 점입가경,

예원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용벽과 옥령롱을 기억하고 입장하는 편이 좋다.

저마다 다른 특색이 있어서 숨은그림찾기 하듯 하나씩 찾아보면 더욱 흥미롭다.



구곡교는 예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건너는 아홉번 꺾어지는 다리이다

. 지그재그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이런 다리를 왜 만들었을까 의문을 품게 되는데,

그 비밀은 숫자 ‘9’에 있다. ‘9’가 중국에서 가장 길한 숫자이다.

삼수당은 예원의 정문을 통과해 처음 만나는 건물이다.

1760년에 지어진 것으로 하나의 벼에서 세 개의 이삭이 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점입가경은 복도로 이뤄진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앙산당과 대가산, 인공 호수를 바라보기 좋은 장소다.

앙산당은 삼수당을 뒤로 돌아 나와서 바로 만나는 2층 누각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대가산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이다

. 대가산은 오랜 세월 물에 씻겨 특이한 형태를 띠는 태호석을 이용해 꾸몄다.

강남 원림에서 인공 산을 만드는 주재료는 돌인데그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것이 바로 태호석이다.

용벽은 예원의 파격적인 건축미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태평천국 운동에 참여한 소도회가 본부로 사용했던 점춘당을 지나면 담장 위로 고개를 치켜든 용의 형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 아무리 귀족이라도 개인 정원에 용의 형상을 조각하면 황제의 권좌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화를 모면하고 담장의 용이 제 형상을 지금까지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반윤단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황제가 그를 불렀을 때 폐하, 용의 발톱은 다섯 개이오나, 신이 만든 동물은 발톱이 세 개뿐이옵니다.

결코 용이 아니옵니다.” 하고 시치미를 떼었다.

반윤단이 서재로 사용했던 옥화당 앞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을 주목하자.

쑤저우 유원의 관운봉, 항저우 시 호의 추운봉과 더불어 강남의 3대 명석으로 꼽힌다.

높이가 3.3m에 달하는 돌에 72개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밑에서 연기를 피우면 구멍으로 연기가 빠져 나오고, 물을 부으면 물이 구멍을 통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원의 사진이 없어 아쉬운 여행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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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오래 전에 가본 적이 있어요. 어마어마한 정원, 꼭 고궁같은 느낌이 들었던 곳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