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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여행
작성자 : [여행달인] 천년주목님
작성일 : 2020-01-14
조회수 : 138

  캄보디아를 여행하기 위해 세 가족 6명이 베트남을 경유하여 씨엠립 공항에 도착하였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캄보디아에 관하여 역사적인 설명을 들어야 했다. 캄보디아의 서쪽과 북서쪽은 타이, 북동쪽은 라오스, 동쪽과 남동쪽은 베트남, 남서쪽은 타이 만과 접하고 있다.

넓은 평원과 여러 개의 큰 강으로 이루어진 캄보디아는 중국과 인도 및 동남아시아를 잇는 주요 육상 로 및 수로 가운데 위치한다.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 및 여러 아시아 문화의 영향이 수도인 프놈펜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프놈펜은 대부분이 농촌으로 이루어진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중심지 모습을 띠고 있다.

2,000년 동안 캄보디아는 인도와 중국으로부터의 영향을 흡수했으며, 그 흡수한 문명을 다른 동남아시아로 전파했다. 1~8세기에 푸난 과 첸라의 힌두교-불교 왕조에서부터 9~15세기 앙코르 시대를 통해, 캄보디아는 지금은 타이, 베트남, 라오스의 일부가 된 영토를 지배했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제국은 12세기에 왕조의 전성시대를 누렸다. 이 시기는 앙코르와트, 바욘, 그리고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톰으로 알려진 거대한 사원 건축물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400년에 걸친 쇠퇴기 후에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고, 20세기 동안에는 전쟁의 혼란을 경험했다. 그 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했고, 그 이후 다시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다. 1975~79년 나라는 농촌에서 공산주의 게릴라 운동을 펼치던 크메르루즈의 집권으로 황폐화되었다. 크메르루즈 집권기 동안 최소한 150만 명에 달하는 캄보디아인들이 피살되었거나 사망했다.



캄보디아는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캄푸차 인민공화국 정권 아래서 회복을 위한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 나라는 정치적 자치를 회복했고 헌법에 기초한 정부를 재수립했다. 이어서 보통선거를 시행했다. 캄보디아 경제는 꾸준히 개선되었고, 이 나라는 "미래를 겁내지 말고 과거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는 캄보디아의 격언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2~13세기에 앙코르왕국은 두 왕의 강력한 통치로 번성했다. 태양의 수호자로 일컬어진 수리아바르만 2세는 지금의 타이 영토 정도로까지 세력을 떨쳤고 도시의 사원앙코르와트를 건설했다. 앙코르와트는 동서 1500미터, 남북 1300미터의 웅장한 사원으로, 250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37년 동안 건설했다. 몇 겹의 성곽이 앙코르와트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마지막 성곽 바깥은 다시 폭 190미터의 거대한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앙코르 유적 중에서는 드물게 서쪽에 정문 입구를 두었으며 큰 탑문이 있다.







 탑문에서부터 사당까지는 너비 9.5미터, 길이 475미터인, 돌이 깔린 도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이 유적은 수리아바르만 2세가 힌두교 비슈누에게 바친 것으로, 그가 죽은 다음에는 묘로 쓰인 것 같다.







사원을 제대로 보려면 3(전생 · 현생 · 내생)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1층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천상계를 상징한다. 건물은 세 겹으로 된 회랑과, 이 세 겹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중앙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겹의 회랑은 중앙 사당 쪽으로 들어갈수록 한 단씩 높아져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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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7년이나 걸쳐서 완성한 앙코르와트군요. 대단한 건축물이예요.